이 사이트에는 지금 세 개의 UOI 단원이 올라와 있습니다. 시간을 잇다 26차시, 생명의 이야기 40차시, 행복 알고리즘 42차시. 다 합치면 108차시입니다.
자료만 보면 처음부터 계획대로 진행된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첫 단원에 들어가기 전까지 상당한 시간을 헤맸고, 두 번째 단원은 진행 도중에 구조를 다시 짰습니다. 세 번째 단원에 와서야 처음부터 원칙을 세우고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같은 자리에 있는 분들이 적지 않으리라 생각해서, 잘 된 결과보다 어디서 어떻게 막혔는지를 남겨두려 합니다.
1. 세 명이었습니다
3학년 담임은 세 명이었습니다. 10년차인 저, 5년차 선생님, 그리고 3월에 갓 발령받은 신규 선생님. 제가 학년부장이었고, 셋 중 가장 선배였습니다.
그리고 셋 다 IB 경험이 없었습니다. 학년 안에 물어볼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뜻이었습니다. 보통 이런 상황이면 가장 경력 있는 사람에게 기대게 되는데, 그게 저였고, 저도 아는 게 없었습니다.
부장이라는 자리는 모를 때 특히 무겁습니다. 모른다고 말하는 것과 학년을 이끄는 일을 동시에 해야 하니까요. 초반의 부담감은 대부분 여기서 왔습니다.
2. 용어부터 몰랐습니다
시작은 수업 설계가 아니라 단어였습니다. 버블맵을 어떻게 그리는지, Central Idea가 무엇인지, 명시된 개념과 관련 개념은 어떻게 다른지, ATL은 무엇이고 학습자상은 어디에 쓰는지, 초학문적 주제는 어떤 기준으로 고르는지.
더 막막했던 건 그다음이었습니다. 이 요소들을 다 알았다고 해도, 무엇부터 손대야 단원 하나가 만들어지는지를 몰랐습니다. Central Idea를 먼저 잡고 차시를 붙이는 건지, 성취기준부터 모으는 건지, 아이들이 할 활동부터 떠올리는 건지. 순서를 모르니 모든 요소를 알아도 조립이 안 됐습니다.
3. 프로젝트 수업인 줄 알았습니다
처음엔 익숙한 것에 갖다 붙였습니다. "결국 프로젝트 수업 아닌가?" 수업 연구 대회에는 여러 번 나가봤고, 긴 호흡의 프로젝트 수업도 여러 차례 운영해봤으니까요.
두 가지가 달랐습니다.
첫째, IB는 프레임워크라 규칙이 있었습니다. 제가 해온 프로젝트 수업은 좋은 주제를 잡고 아이들 반응을 보며 유연하게 끌고 가는 방식이었습니다. UOI는 개념, 탐구 목록, 학습자상, ATL이 서로 맞물려 있어서 하나를 바꾸면 다른 것들이 따라 움직였습니다. 자유도가 아니라 정합성의 문제였습니다.
둘째, 이쪽이 더 컸는데, 제가 해본 프로젝트 수업은 전부 혼자 하는 것이었습니다. 제 교실에서 제가 설계하고 제가 운영했습니다. 잘 되면 제 성과였고 안 되면 제 책임이었으며, 그 사이에 다른 사람이 들어올 일이 없었습니다.
4. 매주 화요일 40분
IB 학교에서의 수업 연구는 형태가 달랐습니다. 매주 화요일 IB부장과 40분씩 협의회를 했고, 그 앞뒤로 학년끼리 따로 모여 이야기했습니다. 한 사람이 짠 것을 셋이 함께 뜯어보고, 각자 교실에서 해본 결과를 다시 가져와 고치는 식이었습니다.
학년 전체가 매주 모여 수업을 함께 연구하고, 공유하고, 그것을 다시 발전시켜 나가는 문화. 저는 그런 방식을 겪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좋은 문화라는 건 금방 알았습니다. 다만 익숙해지는 데 시간이 걸렸습니다. 혼자 설계하던 사람이 매주 자기 설계를 남 앞에 펼쳐놓고 고치는 일에는, 기술보다 습관이 필요했습니다.
5. UOI 1 이전의, 보이지 않던 시간
첫 단원에 들어가기 전까지의 시간을 돌아보면, 눈에 보이는 산출물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 기간에 실제로 한 일은 세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용어와 개념을 익히는 것이었습니다. 둘은 우리 아이들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파악하는 것이었습니다. 3학년이 어느 수준까지 스스로 조사하고 정리할 수 있는지 모르면 차시 분량을 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셋은 동료 교사의 스타일을 파악하는 것이었습니다. 함께 운영할 단원이니, 두 분이 어떤 수업을 편안해하는지 모르면 제가 짠 설계가 그대로 굴러갈 리 없었습니다.
당시에는 이 시간이 진도가 나가지 않는 시간처럼 느껴졌습니다. 실제로 UOI 1 초반에는 계획한 만큼 나가지 못했습니다. 지금 보면 세 번째 항목, 동료 교사의 스타일을 파악한 것이 나중에 가장 크게 작용했습니다.
6. 두 시간의 컨설팅
혼자 자료를 뒤지는 것으로는 잘 풀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다른 학교의 연구교사에게 컨설팅을 요청했고, 두 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준비한 건 정리된 질문지가 아니라 막혀 있던 것들의 목록이었습니다. 버블맵은 실제로 어떻게 그리는지, 단원을 운영하면서 무엇을 기록하고 무엇을 넘기는지, 교실 환경은 어떻게 꾸미는지. 문서로 읽으면 한 줄인데 막상 하려면 손이 안 떨어지는 것들이었습니다.
이 두 시간이 그 전 몇 주보다 도움이 됐습니다. 문서는 완성된 결과를 보여주지만, 앞서 해본 사람은 어디서 넘어지는지를 알려줍니다. 비슷한 위치에 계신 분이라면, 자료를 더 찾기보다 먼저 해본 분께 시간을 청하시길 권합니다.
7. 사회가 혼자 끌고 간 단원
그렇게 UOI 1 「시간을 잇다」를 마쳤습니다. 형식은 갖췄습니다. 그런데 자료를 다시 펼쳐보니 걸리는 게 있었습니다.
성취기준 표에는 사회, 국어, 도덕, 음악, 미술이 고르게 들어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차시별 담당 교과 칸은 거의 전부 '사회'였습니다. 음악과 미술은 맨 끝 Action 산출물 단계에만 붙어 있었습니다. 노래를 만들고 안내 카드를 그리는, 마무리 활동이었습니다.
주제만 봐도 사회 단원이라는 게 보였습니다. UOI 2 「생명의 이야기」도 초안은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번엔 과학이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메인 교과가 하나 있고, 나머지는 그 주위를 받쳐주는 양념 같았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몇몇 교과는 억지로 끼워 맞춘 느낌이 났습니다.
여러 교과가 한 주제 아래 모여 있기는 했지만, 각 교과가 탐구의 한 축을 맡고 있지는 않았습니다. 초학문적이라기보다 다교과적인 단원에 가까웠습니다.
8. 진행 중이던 단원을 갈아엎다
문제는 보이는데 답이 안 보였습니다. 답은 다른 학교 대외공개수업을 다니다가 얻었습니다.
공개된 단원들을 보니 구조가 달랐습니다. 탐구 목록(Lines of Inquiry)이 세 개면, 각 LOI마다 그것을 주도하는 교과가 하나씩 붙어 있었습니다. 교과를 골고루 넣는 문제가 아니라, 교과에게 탐구의 한 구간을 통째로 맡기는 문제였습니다.
그때 UOI 2는 이미 진행 중이었습니다. 그래도 되돌아가 구조를 다시 짰습니다. 기록을 열어보니 "UOI2 교과 분리"라는 메모와 함께 LOI 1과 LOI 2를 갈라놓은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지금 UOI 2의 설계 원칙에는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LOI 1 = 과학(한살이 관찰·실험·유형 다양성), LOI 2 = 수학(길이 측정·비교·어림), LOI 3 = 국어(돌봄 사례 조사·요약·정리·발표). 영어·체육은 관계맺기 흥미 활동으로 배치해 LOI에 1~2차시씩 섞이지 않게 한다.
마지막 문장은 스스로에게 박아둔 못이었습니다. 교과를 한두 차시씩 흩뿌리는 게 예전 방식이었으니, 다시 그러지 않으려고 원칙에 적어둔 것입니다.
바꾸고 나니 연결이 저절로 생겼습니다. LOI 1에서 과학으로 기른 나비와 달팽이와 강낭콩이, LOI 2에서 수학으로 길이를 재는 대상이 됐습니다. 아이들이 쓸 내용을 이미 손에 쥔 상태에서 다음 교과로 넘어가는 구조였습니다. 억지로 끼워 맞춘 느낌이 사라진 건 그때부터였습니다.
9. UOI 3은 처음부터
세 번째 단원 「행복 알고리즘」은 이 원칙을 전제로 시작했습니다. 첫 설계 문서에 이미 배정이 들어가 있습니다.
LOI 1 = 국어(이야기·인과관계·가치), LOI 2 = 도덕·국어(효·우애·마음 전하는 글), LOI 3 = 사회(공익시설·살기 좋은 곳·관점).
나에서 가족으로, 가족에서 공동체로 넓어지는 탐구에 국어·도덕·사회가 차례로 붙습니다. 42차시로 세 단원 중 가장 길지만, 설계에 들인 시간은 오히려 가장 짧았습니다. 무엇부터 손대야 하는지를 알고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첫 단원에서 헤맨 시간이 아깝지 않았다고 느낀 건 이 지점에서였습니다.
10. 그리고 복도가 남았습니다
UOI 1이 끝나갈 무렵 새로운 고민이 생겼습니다. 복도 전시였습니다.
저는 에듀테크가 강점인 교사입니다. 이 블로그에 올라온 글 대부분이 수업 도구를 직접 만든 이야기일 만큼, 그쪽으로는 자신이 있었습니다. 아이들 결과물도 대부분 구글 클래스룸이나 패들렛에 쌓아두는 편이었습니다. 검색이 되고, 언제든 다시 꺼낼 수 있고, 학기가 끝나도 남으니까요.
그런데 IB 학교는 학생의 결과물과 탐구 과정을 교실 곳곳에 걸어둡니다. 지나가는 사람이 벽만 보고도 이 반이 무엇을 탐구하고 있는지 읽을 수 있어야 합니다.
제 자료는 전부 클라우드에 있었습니다. 클래스룸에도 있고 패들렛에도 있는데, 벽에는 없었습니다.
디지털에 강한 것이 여기서는 약점이 됐습니다. 파일로 남기는 습관이 붙을수록 손으로 만들어 붙이는 일에서는 멀어져 있었던 겁니다. 게다가 전시 자체가 원래 제가 약한 영역이었고, 무엇을 골라 걸어야 하는지도 몰랐습니다. 다른 학년에 비해 우리 학년 복도가 눈에 띄게 비어 있었습니다.
11. 남의 복도는 답이 아니었습니다
가장 먼저 한 일은 학년 복도를 돌아다니며 다른 교실을 보는 것이었습니다. 잘된 전시를 보면 방법이 보일 줄 알았습니다.
잘 안 됐습니다. 이유는 단순했습니다. 제가 그 단원을 운영한 게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벽에 걸린 결과물이 어느 차시에서 왜 나왔는지, 그 앞에 무슨 활동이 있었는지를 모르니, 형태만 보고 우리 단원에 옮길 수가 없었습니다. 완성된 전시는 결과여서, 그 결과에 이르는 과정이 없으면 따라 만들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다른 학교 대외공개수업을 찾아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수업을 처음부터 보고, 그 수업의 산출물이 어떻게 벽으로 올라가는지를 같이 봤습니다. 앞뒤가 붙어 있으니 그제야 우리 단원에 옮길 만한 것이 보였습니다. LOI별 교과 배정을 발견한 것도 이렇게 다니던 중이었습니다. 복도를 보러 갔다가 단원 구조를 배워 온 셈입니다.
그렇게 만든 X배너와 차트는 「공유되는 수업을 위하여」에 사진으로 남겨두었습니다.
돌아보며
정리하면 이런 순서였습니다. 아무도 모르는 채로 시작해서, 용어를 익히고 아이들과 동료를 파악하는 데 한 학기 가까이를 썼고, 두 시간의 컨설팅으로 첫 단원을 넘겼고, 두 번째 단원을 진행 중에 갈아엎었고, 세 번째 단원에 와서야 처음부터 원칙을 세우고 시작했습니다.
지나고 보니 결정적인 순간은 자료를 많이 읽은 날이 아니었습니다. 먼저 해본 사람에게 두 시간을 청한 날과 다른 학교 수업을 처음부터 끝까지 앉아서 본 날이었습니다. 둘 다 완성된 문서가 아니라 과정을 본 경험이었습니다.
아직 잘 안 되는 것도 남아 있습니다. 복도 전시는 여전히 제 약한 영역이고, 학부모에게 무엇을 어디까지 공개할지는 계속 고민 중입니다.
세 단원의 차시별 지도안은 수업 연구에 전부 공개해두었습니다. 저처럼 아무도 모르는 채로 시작하시는 분께, 완성된 형식보다 어디서 넘어졌는지가 더 쓸모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