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 연구에 올려둔 세 단원은 겉으로 보면 매끄럽습니다. 차시가 순서대로 붙어 있고 성취기준도 다 채워져 있으니까요.
그런데 단원을 끝내고 나서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두 가지인데, 공교롭게도 둘 다 설계 단계에서 잡을 수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실행하는 중에야 보였을 뿐이죠.
자료를 다시 펼쳐놓고 어디서 어긋났는지 적어둡니다.
1. 나비 애벌레를 "2cm 3mm"라고 적게 했다
UOI 2 「생명의 이야기」에서 LOI 2는 수학이 주도했습니다. 19~26차시, 8차시 분량입니다. 배정한 성취기준은 두 개였습니다.
[4수03-15] 길이 단위 1mm와 1km를 알고, 이를 이용하여 길이를 측정하고 어림하며 수학의 유용성을 인식할 수 있다.
[4수03-16] 1cm와 1mm, 1km와 1m의 관계를 이해하고, 길이를 '몇 cm 몇 mm'와 '몇 mm', '몇 km 몇 m'와 '몇 m'로 다양하게 표현할 수 있다.
즉 이 단원에 들어간 수학은 길이가 전부였습니다.
LOI 1에서 과학으로 배추흰나비와 달팽이와 강낭콩을 길렀으니, LOI 2에서는 그 생물들의 길이를 재는 흐름이었습니다. 손에 재료가 이미 있는 상태에서 수학으로 넘어가는 구조라, 연결 자체는 잘 맞았다고 지금도 생각합니다.
학습지도 만들었습니다. 배추흰나비 한살이 단계마다 길이를 재는 학습지의 부제는 이렇습니다.
2. 그런데 실제로는 1.2cm라고 말한다
문제는 여기입니다. 일상에서 아무도 "2cm 3mm"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2.3cm라고 합니다.
길이를 소수로 표현하는 건 아이들이 앞으로 훨씬 자주 쓰게 될 방식인데, 이 단원의 학습지에는 그렇게 적을 칸이 없었습니다. 길이 학습지 세 종을 다시 열어 확인해보니 소수점이 들어간 표기가 단 한 곳도 없었습니다. 대신 "몇 cm 몇 mm" 형식이 스무 곳 넘게 반복됩니다.
학습지 안내 문구도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몇 cm 몇 mm'와 '몇 mm', '몇 km 몇 m'와 '몇 m'는 같은 길이를 다르게 말한 거예요.
"다르게 말하는" 방법을 알려주면서 정작 제일 많이 쓰는 방법은 목록에 없었던 셈입니다.
이유는 단순합니다. 소수는 3학년 수학 6단원 「분수와 소수」에서 나옵니다. UOI 2를 설계할 때 6단원은 뒤쪽에 있었고, 저는 앞에 있는 길이 단원만 가져왔습니다. 성취기준을 충실히 따랐고, 그 성취기준 자체에 소수가 없었으니 자연스럽게 빠진 겁니다.
교육과정의 순서와 탐구 단원이 필요로 하는 순서가 어긋나 있었는데, 저는 교육과정 순서를 그대로 따랐습니다.
3. 진도가 늦어진 덕에 조건이 맞았다
실제 수업에서는 이 문제가 우리 반에서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UOI 2 진행이 계획보다 늦어지면서, 아이들이 6단원 「분수와 소수」를 이미 끝낸 상태로 LOI 2에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소수를 아는 아이들이었으니 길이를 이야기할 때 표현이 훨씬 자유로웠습니다.
그런데 이건 설계가 좋아서가 아닙니다. 진도가 밀린 덕분에 우연히 조건이 맞은 것입니다.
제가 짠 설계대로 진행됐다면, 아이들은 애벌레를 재면서 "몇 cm 몇 mm"까지만 배우고 단원을 마쳤을 겁니다. 그렇게 짜둔 사람은 저입니다.
우연에 기대서 결과가 괜찮았던 것을 잘한 설계라고 부를 수는 없습니다.
4. 학습지를 만든 것과, 풀어본 것은 다르다
이 대목에서 가장 뼈아픈 건 학습지가 없어서 못 본 게 아니라는 점입니다. 학습지는 만들었습니다. 길이 관련만 세 종이나 만들었습니다.
만들면서도 못 봤습니다. 칸을 그리는 일과 그 칸을 채워보는 일은 다르기 때문입니다.
제가 직접 자를 들고 애벌레 그림을 재서 빈칸을 채워봤다면, 아마 손이 멈췄을 겁니다. "이걸 2cm 3mm라고 쓰는 게 맞나? 아이들이 나중에 이렇게 쓸 일이 있나?" 이 질문 하나면 충분했습니다.
설계 단계에서 학습지를 만드는 데서 끝내지 말고, 교사가 먼저 풀고 시연까지 해봤어야 했습니다. 아이 입장에서 한 번만 통과해보면 드러날 문제였습니다.
분량도 아쉬웠습니다. LOI 2를 8차시로 잡았는데, 분수와 소수까지 끌고 왔다면 수학을 훨씬 두껍게 가져갈 수 있었습니다. 이 반성이 다음 단원에서 수학을 7차시 블록으로 통째로 배치한 선택으로 이어졌습니다.
5. 제안서를 만들었는데, 받을 사람이 없었다
두 번째 아쉬움은 UOI 3 「행복 알고리즘」의 마지막 단계입니다. 전이하기 39~40차시의 설계는 이렇습니다.
더 행복한 우리 동네를 위한 방안 산출물 제작·제안(포스터·제안서·영상 등) + 가족·공동체 행복 실천 약속
"제안"까지 열어둔 설계입니다. 학습지에도 기획 칸을 만들어뒀습니다.
"누구에게"라는 칸을 만들어놓고 비워뒀습니다. 아이들이 채울 거라고 생각했으니까요. 학습지 어디에도 구청이나 행정복지센터처럼 실제로 제안이 도착할 곳은 적혀 있지 않습니다.
결과는 예상 가능했습니다. 대상이 정해지지 않은 제안은 교실 밖으로 나가지 않습니다. 포스터와 제안서는 만들어졌지만, 그걸 받아서 읽고 답을 줄 사람이 없었습니다.
아이들이 동네 개선 아이디어를 실제로 구청에 보내고, 답장을 받고, 작은 것이라도 진짜로 바뀌는 걸 봤다면 완전히 다른 경험이 됐을 겁니다. 거기까지 가지 못하고 교실 안에서 끝났습니다.
6. 아이들은 좋아했는데, 마음이 동한 건 아니었다
학교 밖으로 나가 플로깅을 하는 활동도 했습니다. 아이들은 좋아했고 재미있어했습니다. 활동 자체로 보면 성공한 수업입니다.
그런데 돌아보면 교사의 의도가 다분히 깔린 활동이었습니다. 아이들이 탐구를 하다가 "우리 동네가 더럽다, 치우자"에 스스로 도달한 게 아니라, 제가 준비해둔 활동에 아이들이 즐겁게 참여한 쪽에 가까웠습니다.
재미있었던 것과 마음이 움직인 것은 다릅니다. 아이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면 그 둘을 구분하기가 어려워집니다.
7. 원칙은 세 번이나 적어뒀는데
더 뼈아픈 건, 이걸 예방하려는 원칙을 제가 이미 적어뒀다는 사실입니다. 세 단원 전부에 같은 문장이 들어 있습니다.
Action 산출물은 학생 브레인스토밍 → 투표로 결정한다. (교사가 미리 정하지 않는다)
원칙을 세 번 적어두고도 그랬습니다. 지키긴 지켰거든요. 산출물의 형태는 아이들이 골랐습니다. 포스터로 할지 영상으로 할지는 투표로 정했습니다.
다만 무엇을 문제로 볼 것인지는 이미 제가 정해둔 상태였습니다. 선택지 안에서의 자유는 줬지만, 선택지를 만든 사람은 저였습니다. 원칙은 산출물의 형태에만 적용됐고, 그보다 앞선 단계에는 닿지 않았습니다.
8. 약속은 받았는데, 확인할 장치가 없다
같은 학습지 마지막에는 실천 약속 칸이 있습니다.
약속은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 약속이 지켜졌는지 확인하는 장치는 만들지 않았습니다.
흥미로운 건, 제가 회수 구조 자체를 모르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이 단원에는 '행복 씨앗'이라는 장치가 있습니다. 11~12차시에 "내가 소중히 여기는 행복은?"을 심어두고, 31~32차시에 "그때와 지금 달라졌나요?"로 되돌아옵니다. 심고 회수하는 구조를 단원 안에서는 설계했습니다.
그런데 단원이 끝난 뒤는 보지 않았습니다. 플로깅을 했던 아이가 그 뒤로도 길에서 쓰레기를 줍는지, 그날 하루의 행사로 끝났는지 저는 모릅니다. 관찰할 방법을 설계해두지 않았으니까요.
두 아쉬움의 공통점
나란히 놓고 보니 모양이 같습니다.
- 학습지는 만들었지만, 풀어보지 않았다
- 제안 활동은 넣었지만, 받을 사람을 정하지 않았다
- 실천 약속은 받았지만, 확인할 장치를 두지 않았다
전부 형식은 갖췄는데 그 형식이 실제로 작동하는지를 미리 확인하지 않은 경우입니다. 계획표 위에서는 모두 채워져 있었습니다. 빈칸이 없으니 완성된 것처럼 보였고요.
아직 답을 못 찾은 것
첫 번째는 답이 비교적 분명합니다. 학습지를 만들었으면 교사가 먼저 풀어본다. 아이 입장에서 한 번 통과해보는 것으로 상당수가 걸러집니다. 다음 단원부터는 그렇게 할 생각입니다.
문제는 두 번째입니다. 아직 답을 못 찾았습니다.
아이들이 진짜로 동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교사가 판을 깔지 않으면 3학년이 스스로 사회 문제를 발견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판을 깔면 그건 이미 교사의 의도입니다. 이 사이 어딘가에 답이 있을 텐데, 세 단원을 하고도 어디쯤인지 모르겠습니다.
행동의 변화는 또 어떻게 관찰할까요. 단원이 끝나면 아이들을 그 맥락에서 다시 만날 일이 없습니다. 두 달 뒤에 "아직도 쓰레기 줍니?"라고 묻는 것이 평가가 될 수 있을까요. 물어보는 순간 그 질문 자체가 또 하나의 개입이 되어버리는데요.
다음 단원에서 다르게 해보려 합니다. 그리고 그것도 여기에 적어두려 합니다. 잘된 것보다 이런 기록이 더 쓸모 있다는 걸, 세 단원을 하면서 알게 됐습니다.
세 단원의 차시별 지도안은 수업 연구에 전부 공개해두었습니다. 여기 적은 아쉬움들이 그 안에 그대로 남아 있으니, 같은 자리에 서신 분이라면 처음 시작할 때의 기록과 함께 보셔도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