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 자료를 읽다 느낀 갈증
학습연구년제를 맞아 수업과 평가에 관한 자료를 읽는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책뿐만 아니라 교육부 고시, 연구 보고서, 각종 웹 문서를 화면으로 읽는 일이 일상이 되었죠. 종이 자료라면 형광펜으로 밑줄을 긋고 메모를 남기겠지만, 웹 브라우저에서는 그게 되지 않았습니다.
읽다가 중요한 문장을 만나면 드래그해서 복사한 뒤 메모장에 붙여넣기를 반복했습니다. 하지만 복사해둔 텍스트만으로는 맥락을 잃기 쉬웠고, 어떤 페이지에서 가져온 내용인지 다시 찾으려면 한참을 헤매야 했습니다. "웹에서도 형광펜처럼 표시하고, 나중에 다시 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점점 커졌습니다.
AI에게 물어보다
그래서 ChatGPT와 Google Gemini에게 물어봤습니다. "웹페이지에서 텍스트를 형광펜처럼 하이라이트하고 저장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두 AI 모두 크롬 확장프로그램을 추천해주었습니다.
몇 가지를 설치해 사용해봤지만, 만족스럽지 않았습니다. 어떤 확장프로그램은 광고가 너무 많았고, 어떤 것은 회원가입과 로그인을 요구했습니다. 무료 버전에서는 하이라이트 색상이 하나뿐이거나, 정작 제가 원하는 "읽기 진도 표시" 같은 기능은 없었습니다. 불필요한 기능은 잔뜩 있는데, 딱 필요한 기능은 빠져 있는 느낌이었죠.
"내 입맛에 맞는 게 없다면, 직접 만들 수는 없을까?"
바이브코딩, 그 생각의 시작
그즈음 YouTube에서 '바이브코딩(Vibe Coding)'이라는 영상을 여러 번 본 적이 있었습니다. AI에게 원하는 기능을 말로 설명하면 코드를 만들어준다는 내용이었죠. 프로그래밍을 전혀 모르는 사람도 아이디어만 있으면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다는 이야기에 반신반의했지만, 형광펜 확장프로그램이 절실했던 저는 한번 시도해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첫 시도 — Google Gemini Canvas
가장 먼저 시도한 도구는 Google Gemini의 Canvas 기능이었습니다. 채팅창에 원하는 기능을 설명했습니다.
- 웹페이지에서 텍스트를 드래그하면 형광펜으로 표시
- 여러 색상 선택 가능
- 표시한 내용을 저장해서 다음에 방문했을 때도 유지
Gemini는 실제로 동작하는 코드를 만들어주었습니다. 크롬 확장프로그램의 기본 구조인 manifest.json, popup.html, content.js 같은 파일들이 나왔고, 설명대로 따라 하니 크롬에 설치까지 되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사용해보니 기대와는 차이가 있었습니다. 하이라이트가 페이지를 새로고침하면 사라지거나, 특정 웹사이트에서는 작동하지 않는 등 아쉬운 부분이 많았습니다.
두 번째 시도 — Replit
Gemini Canvas의 결과가 아쉬워 다른 도구를 찾아보다가 Replit이라는 온라인 코딩 플랫폼을 발견했습니다. Replit의 AI 기능은 코드를 더 세밀하게 수정하고, 오류를 잡아주는 데 강점이 있었습니다.
Gemini Canvas에서 만든 코드를 기반으로 Replit에서 개선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하이라이트가 새로고침해도 유지되게 해줘", "색상을 5가지로 늘려줘", "하이라이트한 텍스트 목록을 팝업에서 볼 수 있게 해줘"처럼 원하는 기능을 하나씩 추가해 나갔습니다. AI와 대화하듯 코드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정말 신기했습니다.
완성, 그리고 실제 활용
여러 번의 수정을 거쳐 드디어 만족스러운 확장프로그램이 완성되었습니다. 크롬 웹스토어에 등록하는 과정도 처음이라 헤맸지만, 검색하며 하나씩 해결해 나갔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학습연구년제 공부에 활용하기 시작했습니다.
교육부 고시 문서를 읽으며 핵심 문장에 분홍색 형광펜을 칠하고, 평가 기준 관련 내용에는 노란색으로 표시했습니다. 나중에 다시 그 페이지를 방문하면 이전에 표시해둔 내용이 그대로 남아 있어서, 읽기 진도를 파악하기에도 편리했습니다.
필요에서 시작된, 교육 프로그램 개발의 씨앗
돌이켜보면, 이 경험의 핵심은 단순합니다. 필요를 느꼈고, 기존 도구가 만족스럽지 않았고, 그래서 직접 만들어봤다는 것. 프로그래밍을 전공하지 않은 초등학교 교사가, AI 코딩 도구의 도움을 받아 실제로 쓸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든 것입니다.
이 작은 성공 경험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이어졌습니다. "교육 현장의 불편함을 기술로 해결할 수 있다"는 확신이 생기면서, 자연스럽게 교육용 프로그램 개발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수업에서 활용할 수 있는 도구, 학생들의 학습을 돕는 프로그램 — 이런 것들을 직접 만들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의 씨앗이 이때 뿌려진 셈이죠.
"비전공자라서 못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를 아는 사람이기에 더 잘 만들 수 있는 것들이 있다."